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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갑자기 사라졌다

1.


짱아가 갔다.

정말 갑작스럽게, 느닷없이, 찰나의 순간처럼 가버렸다.

우리는 몰랐다. 이렇게 갑자기 가버릴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 했다.

늘 이렇게 우리와 함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을까.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당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항상 저 자리에 있는 가구처럼. 소파처럼. 인형처럼. 짱아는 늘 집 어딘가에 있었기에.

집에 올 때마다 우릴 반겨줬기에. 필요하면 무조건 우리에게 와줬기 때문에.

의식조차 하지 못 했다. 사람들은 항상 익숙함에 속고 산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패착이었다. 그렇다.

짱아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짱아의 시간은 훨씬 더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2.


느껴지지 않았다.

짱아의 심장이 멎었다. 나는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짱아의 마지막에 곁에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짱아를 차마 바로 볼 수 없었다. 가족들도 모두 똑같은 심정이었으리라.

그들은 각자의 방에 들어갔고, 거실에는 나와 짱아만 덩그러니 남았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된 이후 나는 본가의 방이 따로 없다. 그래서 가끔 집에 오게 되면 주로 거실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짱아는 집에 계속 있었음에도, 생각해보면 따로 그의 방이라고 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어느 날은 안방에, 또 어느 날은 동생방에, 또는 거실에, 가끔은 베란다에, 주방에 그의 자리를 잡았다.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짱아만의 공간을 따로 마련해주지 못한 사실이 가슴이 아프다.

집안 공간 사방을 누비며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짱아를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일종의 쇼처럼, 놀이처럼 여기기만 한건 아닐까.

우리에게 짱아는 어떤 존재였을까.


짱아는 우리를 정말 믿고, 우리를 좋아해줬는데, 우리는 짱아에게 어떻게 대해준걸까.


3.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온 몸이 저린 듯 고통스럽다.

하지만 짱아가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큰 종양이 혈관을 막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루 전날까지도 짱아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출근하는 엄마를 마중해주고, 동생이 준 밥을 맛있게 먹고, 낮잠도 자고, 저녁에 찾아온 치킨 배달원을 향해 맹렬하게 짖었다. 다음 날 아침, 동생이 씻고 있는 사이에 오줌을 누려고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다.

피오줌이 나왔다.

그리고 증세가 시작됐다고 한다. 구토를 하고,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몸을 가누지 못 했다.

동생이 빨리 병원에 데려갔지만,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서울에서 오면서도 나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수술을 하면 될 것 같았다.

더 큰 병원으로 데려가서 수술 시키면 될 거라고. 예전에도 몇 번 치료받고 잘 되었으니까.

그래도 계속 기도를 했다. 신이 있다면 제발 우리 짱아 꼭 살려달라고.

그렇게 와서 처음 맞이한 짱아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냥 터져버렸다. 우리 가족 모두 터져버렸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욕이 나왔다. 이 상황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믿을 수도 없었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분명 내 눈앞에 있는 짱아는 짱아가 맞지만,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짱아의 모습이 아니었다.

불과 2달 전에, 평소와 다름 없었는데. 동생 말에 의하면 하루 전날까지도 똑같았다는데.

지금은 그저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하루종일 무슨 놈의 검사를 받은건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짱아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으로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흔한 장치, 볼때마다 식상하다고만 여겼던 흔한 설정.

하지만 이것은 현실. 매우 지독한 현실.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계속 멍한 상태로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그러나 나에게 무감각했던 그 시간은 짱아에게는 억겁의 시간.

그리고 짱아와 나 둘만 남겨진 이 공간은 정말 낯선 이공간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주말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다가왔다.

나는 비겁하게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짱아의 호흡이 급격하게 가빠졌다. 나는 놀라 짱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직감적으로 짱아의 심장 부근에 손을 갖다대었다. 아직까지는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짱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짱아야 사랑해.. 고생 많았어.. 짱아야..

갑자기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수 초를 급박하게 뛰던 그 심장이

단 한 순간에 멎어버렸다..

그 때 짱아의 얼굴을 봤다. 간신히 눈만 껌뻑거리고 있던 짱아의 눈동자는

나를 보고 있었다.

다시 터져버렸다. 분명하다. 마지막 순간에 나를 봐주고 가버렸다.

짱아야... 목놓아 울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비통함, 처연함,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이 절망감.

마지막까지 배려만 해주는 녀석의 선함에 나는 굴복했다.

그래서 아플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짱아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유산이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정할수만 없는 이 아픔. 고통. 현실.

아플때마다 짱아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추억하려고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애도이자, 최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4,


신을 믿지 않기로 했다.

짱아같이 착한 존재를 그렇게 데려간, 만약에 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버린 그 주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천국의 존재는 믿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짱아같은 착하고 선한 존재들이 이후 어떻게 되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냥 우주의 어떤 원리에 의한 사후 공간이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반대로 지옥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내야겠지.. 이 삶을

나중에 떳떳하게 짱아랑 다시 만나려면, 그렇게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잘 챙겨주지도 못 하고, 고생만 하다 가버린 우리 불쌍한 짱아.

그 곳에서는 늘 행복하길.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아무런 고통도 겪지 말고, 늘 행복하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길.


5.


짱아.. 개구쟁이.. 병돌이~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나중에 우리 가족 모두 '꼭' 다시 만나자.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마음껏 뛰어 놀아야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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